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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

“국정기획위원회는 매일같이 우리가 뙤약볕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입니까? 이런 환경 속에서도 우리가 이렇게 날마다 외치는 것은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투쟁으로 만들어낸 일자리 잃어버릴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 무너진 것들, 짓밟힌 권리들을 되찾읍시다.”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수미 활동가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 노동자가 일하기 전, 세상이 얼마나 조용했을까.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권고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알리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광화문에서, 국회의사당역에서 자신의 몸으로, 목소리로 권리를 알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도로 위를 행진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와 마주칠 수 있었을까. 권리를 찾기 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올해 가장 덥던 여름, T타워와 국정기획위원회 앞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지켰다.
내란정부 이후 새 정부가 꾸려졌다고 한다. 어떤 정권에서든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은 비상사태였다. 이재명 정부도 마찬가지다. 7월 중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였던 정은경 장관에게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보장과 확대를 요구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 CRPD)을 알릴 의무는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에 있다. 유예된 중증장애인의 노동권 보장과 사회 참여 독려를 위해 정책을 만들고 이행하지 못할망정 예산과 제도를 이유로 국정과제에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넣을 수 없다는 말은 핑계고 무책임이다.
보건복지부와 이재명 정부는 400명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를 하루 아침에 해고 시킨 서울시의 혐오 논리와 정치를 답습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집회 시위에 동원되는 일자리라고 왜곡하며 사회적 소수자의 중요한 표현 수단이자 헌법과 국제법이 보장하는 집회 시위를 폄하했다. 이에 노동할 수 없다고 여겨진 몸들이 농성장을 꾸리고, 지키고, 선전전과 결의대회를 이어갔다. 낮과 밤으로 권리의 자리를 지켰다.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 청문회에서 정은경 장관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다른 장애인 일자리와 비교해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T타워 농성에 이어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도 권리중심 용어를 반영하기 위한 투쟁이 이어졌다. 7월 24일 권리중심 노동자와 동지들의 투쟁으로 운영위원회 긴급회의가 소진되었으나, 실무진과 일부 반대 입장에 의해 가로 막혔다. 권리중심에 정치적인 맥락이 포함되어서라고 했다. ‘권리’를,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넣는 일에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애인 권리를 제외시키고 무시한 지금까지의 작태와 다름 없었다. 보건복지부 장관도 국정기획위원회도 권한과 책임을 가졌으나 돌아온 답은 지금까지처럼 중증장애인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세상에서 노동자로, 동지로 만나기는 커녕 잠시 마주칠 수도 없이 시설에 감금했던 세상을 유지하겠다는 말이었다.
이에 중증장애인 노동권을 알리고자 활동가 세 명은 영추문에 올랐다. 영추문은 경복궁을 출입하는 사대문 중 임금 아닌 관리와 백성들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문이라고 했다. 장애인 권리를 알리고자 현수막을 내린 사람들의 손목에 경찰은 수갑을 채웠다. 세 활동가는 구속되어 이튿날 석방되었으나 현수막을 내리는 일보다 ‘권리중심’ 네 글자를 넣는 과정은 훨씬 지난했다.
뜨거운 여름을 지나 국정과제에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홍보가 들어갔으나 ‘권리중심’ 네 글자는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는 여전히 중증장애인 일자리와 정치적 표현을 검열하고 있다.
함께 살면 시끄럽다. 때로 서로가 이상하고 불편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장애인 당사자가 외출하지 않고, 탈시설 하지 않고, 일하지 않고, 노래하지 않고, 춤추지 않고, 자기만의 언어로 외치지 않는 세상이야말로 이상하고 조용하고 문제적이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는 보건복지부가, 공무원이, 언론이 하지 않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 노동자는 매일 세상에 말을 걸고 있다. 존재만으로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를 모른 척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