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혜원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출처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닷페이스
‘시설은 집이 아니다’. 식사를 하고, 몸을 뉘여 잠을 자도 그곳은 집이 될 수 없었다. 집이 되기 위한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한 집의 조건은 아래와 같다.
1.
내가 원하는 대로 생활할 수 있을 것
2.
이를 위한 공간을 내 마음대로 꾸릴 수 있을 것
3.
내가 허용한 소리 이외의 소음이 있지 않을 것
4.
내가 허용하지 않은 물리적 침범이 일어나지 않을 것
장애인거주시설은 위의 조건 중 단 하나도 갖출 수 없는 환경이다. 이제는 문을 닫은 ‘향유의 집’을 그 예로 들어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향유의 집’은 지금의 프리웰재단에 공익 이사진이 들어오기 전 ‘석암베데스다요양원’으로 불리었다. 그 곳은 걷기 좋아하는 사람이 시설 부지를 걷는 것조차 허가하지 않았다. 앞마당에서조차 추방되어 벽과 창문 그리고 우리처럼 생긴 나무 문으로 통제되어 몇십 미터 남짓인 거실만 걸을 수 있었으며, 문화생활은 커녕 외출조차 거의 할 수 없었다. 복도에 양옆으로 있는 방문마다 6~8평 남짓한 그 안에는 최소 5명이 함께 살았다. 자신이 가지고 입소한 것 외에는 취향과 필요로 가질 수 없는 것은 없었다. 거주자가 아닌 시설 측의 이익을 위해 하나의 화장실을 두 방 사이에 지었다. 중증장애인들 열댓명이 화장실을 공유해야만 했다. 신변 처리와 목욕 재개에 사생활이란 없이 허용한 적 없었는데도 타인이 늘 침범해 있었다. 언어폭력과 구타도 상습적으로 있었다. 지원이 아닌 침범이 도처에 널려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장애인거주시설이었다.
‘도저히 집이 될 수 없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프리웰 재단 이사장) 동지의 설명을 들으며 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로니에 8인*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1987년부터 37년간 유지되었던 ‘향유의 집’은 이제는 폐쇄되어 그 땅에, 그 자리에 장애인특화자립주택 ‘여기가(家)’가 되었다. 이제 최초 거주자가 이사를 들어와 이제는 다크투어의 형식으로는 마지막 방문이 되는 자리에 함께했다. 차를 몰고 길목에 들어서자 ‘동림이 형’이 전동 휠체어가 젖을 걱정이 들지도 않는지 도착하는 방문객들을 맞이하러 나와 계셨다. ‘동림이 형’은 마로니에 8인* 중 한 명인 김동림(현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별명 : 달팽이)으로 ‘자립생활’이라는 개념이 제도화 되도록 가열차게 투쟁하고 지금은 자신만의 속도로 지역 공동체에서 삶을 누리는 평범한 시민이 되었다. 마지막 다크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이 모두 도착하자 ‘동림이 형’은 ‘여기가’의 공용 공간에서 당시 자신의 장애인거주시설 경험을 나누어주셨다. ‘전쟁’을 겪어내야 했던 화장실 이용 경험, 시설 철거 전 모습을 담은 닷페이스의 영상 속 스치듯 나온 자신이 묵었던 방, 그 속에서 나오겠다고 한 결심. ‘동림이 형’은 그 모든 것을 웃으며 말했다. ‘살아내야 한다면 인간답게 살아보고 싶다’, 그게 전부였다.
만취하여 귀가한 아버지가 자신을 보면 “저놈 빨리 죽어야지” 라는 말에 TV에서 본 장애인거주시설에 가고 싶다고 했다. 시설을 보고 온 어머니가 “거기(시설) 가지 말고, 엄마랑 둘이서 살자.” 라며 자신을 붙잡았지만, 가정의 불화가 곧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에 입소를 자처했다.
같은 석암재단의 다른 시설에서 1986년부터 거주하다 탈시설한 김진석님의 이야기까지 들은 뒤 방문객들은 본격적으로 ‘여기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1층 모두의 화장실부터 시작하여 와상장애인까지 고려한 방 두개와 거실 하나의 오롯한 공간. 이전처럼 화장실 하나에 문이 두 개였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는 거실로, 하나는 작은 방으로 이어져 방문객이 있든 없든 거실을 가로지르지 않고, 노출 없이 물기를 닦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고려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방의 모서리에는 창이 나있었다. 만들기 까다로워도 개방감과 경치만을 위해 취향이 잔뜩 담긴 사설 단독주택은 저렇다더라 하며 TV에서나 보던 창이었다. 옥상에는 희고 큰 콘크리트 벽이 서있었다. 이게 뭔지 묻자 김정하 활동가는 푸시시 웃으며 날씨가 좋아지면 다같이 옥상에서 영화를 보았으면 해서 스크린 대용으로 만들었다고 답했다. 터프한 스크린과 세심한 생활 공간, 집은 역시 마음이 담기는 곳이며 동시에 만든 이를 닮은 곳이라는 것을 김정하 활동가를 보며 느꼈다.
사진 우측 끄트머리에 보이는 것이 바로 그 ‘스크린’이다. 사회적 교류를 위한 장소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옥상 바닥은 배수처리에 용이하고, 관리가 쉬운 쨍한 녹색의 방수페인트 대신 짙은 색의 목조 데크를 깔았다.
끝으로 집이 필요한 모든 이들을 위해 장애인뿐만 아니라 한부모가족, 1인 가구, 난민 자격 이주민까지 고려하여 차츰 입주를 받을 예정이라는 소식도 들었다. ‘여기가’가 품을 사람들과 그들이 그려낼 일상이 궁금해졌다.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집을 매개로 만나게 될 사람들을 축하하며, 시설의 종말을 꿈꾼다.
‘여기家’의 뜻은 ‘여기가 내 집이다’
‘여기가’ 에 대한 자세한 내용 및 입주 신청을 원하신다면 ⇒ https://thehome.freewel.org/
마로니에 8인*은 2009년,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거주하고 있던 장애인 입소인 8명이 당시 서울시장공관이 있던 서울 대학로의 마로니에공원 근처에서 62일간 노숙농성하며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자립생활)”를 요구했던 일을 가리키는 말.
자기만의 방**보다 자신만의 공간/집이 더 적절한 표현이지만 버지니아 울프가 쓴「자기만의 방」(1929)에서 차용했다.




